2023. 7. 16. 17:58ㆍ레포트
Ⅱ. 본 론
1. 이론적 배경
웬트(Alexander E. Wendt)는 물질주의(materialism)에 기반하여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이론들에 도전하는 새로운 이론의 기초를 세우고 발전시켰다. 기존 이론들이 냉전의 종식과 그로 인한 국제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자 그의 이론은 국제정치 연구의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그 위상이 격상되었다. 웬츠의 핵심 주장은 다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국제관계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은 물질적 힘이 아니라 관념과 인식이다.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3,000개 가지고 있는 미국보다는 핵을 10여 개 가지고 있는 북한에 더 위협을 느낀다. 이는 대한민국이 관념적으로 북한을 적, 미국을 동맹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제체제의 구조도 물질적인 능력의 분배가 아니라 ‘관념의 분배’(distribution of ideas)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본다.
둘째, 국가들이 상호주관적 교류(inter-subjective interaction)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정체성과 이익이 형성ㆍ변화하며 그에 따라 국제체제의 구조적 성격이 결정된다. 이렇게 형성된 구조는 다시 개별 국가의 정체성과 이익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상호주관적 교류’라는 것은 서로를 인식하고 인정하면서 상호이해를 형성해가는 교류를 말한다. ‘정체성’은 다른 나라들과 자국을 구분지어 주는 성격을 말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기대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이익’은 정체성을 기반으로 해서 이에 부합되도록 하는 행동의 방향을 말한다. 예컨대 자유세계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자유주의적 성격의 정책을 실시하고자 할 것이고, 제국주의적 국가는 제국주의적 정책을 실시하고자 할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 기대하고 자신들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이익이라 생각한다.
셋째, 정체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규범(norm)을 중시한다. ‘규범’은 행위자 공동체가 무엇이 적절한 행동인가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일종의 기대를 의미한다. 다른 말로 일정한 정체성의 행위자들이 가지는 행동의 준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규범은 정책결정자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쳐 특정 정책을 선호하거나 회피하도록 하고, 국제적으로 확산된 규범은 국내 행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규범은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이론적 배경 속에의 외교정책ㆍ안보정책의 함의는 힘보다는 관념이 중요하다는 것과 정체성과 이익의 변화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 레포트는 이러한 이론적 배경하에서 러시아의 냉전 이후 국제관계 구조에 대한 인식을 국제주의로 규정하고 역사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러시아의 국제정세 인식의 변화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국제주의’는 국가와 민족, 국경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어떤 목적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사상이나 운동, 또는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이나 정책을 가리킨다. 이것은 국가ㆍ집단ㆍ개인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국제주의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규범(인도, 평등 등)의 확산, 경제적인 이익의 추구, 국가 간 안전보장 등 다양하다. 이때 국제주의를 추구하는 방식(주체)은 국제제도, 다각적 협력 등 국가 간의 것들도 있고 탈(脫)국가적인 것을 통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국제주의는 국가ㆍ민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국가보다 로마 교황의 교권을 강조하는 중세 유럽의 유니버설리즘(universalism)이나 각 개인을 단위로 하여 세계를 하나의 폴리스로 생각하는 코스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과는 구별된다.
러시아의 국제체제 구조에 대한 인식은 이러한 국제주의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역사의 진행 과정 속 여러 조건의 변화(특히, 러시아의 국력과 적대국들과의 상대적 국력)에 따라 그 세부적인 특성을 변화시켜왔다. 변화는 3개의 시기로 구분해서 확인 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시기는 1919년 창설된 제3 인터내셔널부터 소련 해체로 인한 냉전의 종전까지로, 이 시기의 소련(러시아)의 국제정세 인식(지향)은 ‘공산주의적 국제주의’로 표현할 수 있다. 두 번째 시기는 소련 해체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로 여기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로 표현할 수 있겠다. 이때 2000년대 후반이라는 시간은 미국이 이라크-아프간 전쟁에서 실패하고 2008년 경제공황을 겪는 와중에 중국이 본격적으로 부상하는 시기로 국제정치 공간에서 미국의 패권이 눈에 띄게 약해지는 시점이 되겠다. 마지막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인식(지향)으로 이전 시기의 국제질서를 수정하고자 하는 ‘수정주의적 국제주의’가 되겠다. 각 시기별 러시아는 국제질서 인식의 틀에 기반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이익을 결정하고 변화시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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